• Home
  • > 자료마당
  • > 영문블로그

영문블로그

Story of the Crown Peince - Sado in Suwon Hwaseong

2019.10.22 관리자 101

A Story of the Crown Peince - Sado in Suwon Hwaseong


Kang Yejin


   The most tragic family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is the story of the three generations - King Yeongjo, Sado, and King Jeongjo. King Yeongjo clung to the recognition from his servants due to his inferiority compelx about his mother who ahd been a court lady, and thus tried to lead the harmony among various political parties. Moreover, the king who expected his son to have a strong ardor for study like himself was very strict with his son, the crown prince Sado who was clever but interested in martial arts rather than study. The son felt so frustrated with his father that he used to visit Suwon to perfect his martial arts skills.


   Their conflict had deepened due to 'Dae Ri Cheong Jeong', a political system that the king's descendants should govern the country instead of the king when he is aged or having health problem. Although it started in order to help Sado build up his political experience, Yeongjo suddenly declated the demise of the crown. Since accepting his father's decision was considered disloyal, it was extremely stressful for Sado to keep making an objection against his father's decision. In the end, several times of declaration caused his mental illness. By taking advantage of it, the hostile vassals kept making appeal to the king to stand against the prince whom they thought to be a rebel. In 1762, King Yeongjo made an extreme choice - which is to lock his son in a grain-chest. It was to prevent his grandson from being a son of the traitor by making the death a suicide. The movie 'Sado', a posthumous name given to the prince that means 'grived for missing the son', has celarly described this tragedy.


   Jeongjo was adopted to the prince Hyojang (the first son of Yeongjo and the brother of the peince Sado) when he ascended the throne. On the day of his accession, however, he declared that "I am the son of the crown prince Sado", expressing his intention not to forget his father's death. Jeongjo relocated his father's tomb to the Mt. Paldal and built Suwon Hwaseong where the stayed evert time he visited the tomb. The king had visited Suwon 13 times for 12 years.





수원화성 속 사도세자 이야기

강예진


   조선왕조 중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는 영조,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일 것이다.

   영조는 어머니가 궁중나인 출신이라는 열등감으로 사대부인 신하들로부터 받는 인정을 중시하였고, 여러 당파 간의 화합을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본인처럼 학문에 대한 높은 탐구를 기대한 왕은 영특하나 무예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세자에게 엄격할 수 밖에 없었다. 사도세자는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겼고, 수원을 즐겨 찾으며 무술을 갈고 닦았다.

   좁혀지지 않는 부자의 갈등은 대리청정(왕이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 후손이 대신 정사를 돌봄)으로 깊어졌다. 세자의 정치적 경험을 위해 시작하였으나, 영조는 반대의 의견을 내세우는 세자에게 양위선언(대리청정을 끝내고 왕의 자리를 넘겨줌을 정식으로 밝힘)을 했다. 그것을 받아드리면 불충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만류해야 하는 세자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수차례에 걸친 양위선언은 세자로 하여금 정신병을 얻게 만들었다. 세자에게 적대적인 신하들에게 그의 자리를 위협할 빌미가 생긴 것이다. 그들로부터 '세자가 역모를 꾀한다'는 등 지속적인 반대 상소가 올라오자, 1762년 정조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는데, 이는 손자인 정조를 역적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해 사도세자가 자결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러한 비극은 영화 '사도'에 잘 나타났다. 사도란 영조가 세자의 사후에 내린 시호로 '그를 생각하며 슬퍼한다'는 뜻이다.

   정조는 요절한 효장세자(영조의 큰아들이자 사도세자의 형)의 아들로 입적해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그는 즉위하던 날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개혁군주인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팔달산으로 이전하여 지은 것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정조는 완공 후 참배를 위해 12년 간 13차례에 걸쳐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 facebook
  •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