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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소식

[멕시코 똘루카] 10월 2일

2018.10.19 관리자 29

 

[10 2]

 

Enrique Zamora

 

일부 멕시코인들은 196810 2일을 잊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그 수요일 밤은 멕시코 현대 역사의 이정표로 남아있습니다. 틀라텔로코 참사(The Tlatelolco Massacre )는 멕시코 정부에 독재정치 반대를 위해 수도에 모인 학생, 교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이 시위는 국가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 시민의 자유, 불평등의 감소, 집권 정당 사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다각도에서 비교해보면 모두 같은 상황에서 비롯되었으며, 집단에 의해 억압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건에서 각 국가의 정부는 사람들이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서 시위를 한다고 판단하였고, 따라서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왜곡하여 이 운동의 참가자들이 테러리스트, 범죄자 혹은 국가 안전에 위험이 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 날의 멕시코 시위는 억압되었으며, 이시위를 끝내기 위해 1968 10 2일 멕시코시티 틀라텔로코 지역의 문화광장3(Plaza de las Tres Culturas)에서 대학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당시, 멕시코 인구의 대부분이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고, 반대로 도시에는 시위, 학생이나 노동자들에 대해서 일말의 동정도 없는, 그야말로 엄청난 정치적 충성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이는 당시 정권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뿐 아니라 정권을 정당화시키려는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과는 달리, 멕시코 사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정부는 독재정치를 확고히 유지하였으며 공권력 사용을 합법화하였고, 체포, 학대, 고문, 박해, 강제실종, 간첩행위, 범죄화제도, 살인, 사형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만연하였습니다. 틀라텔로코 참사가 시작될 때, 총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그 날 밤 외국 예술가들이 출연한TV프로그램을 시청하였습니다.

수도에서는 시체들이 트럭에 실리고, 병원에서는 총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많은 부모들이 밖으로 나가 아이를 찾고 있는 동안에, 대부분의 멕시코 가정은 오래 기대해왔던 유명인사를 보는데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사건과 무관한 내용만 보도됐으며 사람들은 68년 하계 올림픽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뉴스에 안도하였을 뿐입니다.

10 2일 사건은 소위 문화광장3’ 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정부와 미디어가 뉴스보도를 무마시키려 하였다는 사실은 근년에 들어서 오히려 그 사실이 더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멕시코 수도와 수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똘루카에서는 피해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시위의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기념하려는 시도는 묵인되고 있으며 또한 가해자 역시 처벌받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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